한국 천주교의 성립에서 선교 자유까지 (1784년-1886년) 교회는 사목자들의 가르침과 사목정책, 평신도의 활동을 통해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 이웃사랑, 그중에서도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증거했다. |
선교 자유에서 해방 전까지 (1886년-1945년) 교회는 천주교회 기초단위인 각 본당이 본당에 파견된 수도자들과 함께 지역사회 안에서 그 지역사회의 기초복지라고 할 수 있는 고아 수용과 영유아 보육, 노인 수용과 보호, 수용된 고아와 노인의 치료를 위한 시약소를 운영하며 사회복지 활동을 펼쳤다. 또한 교회는 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교회의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통제하려는 일제식민정부의 의도에 따라 보육, 양로, 교육, 의료 분야의 사회복지 활동 분야에서 쫓겨났지만, 교회는 사회의 기본교육과 언론문화 복지를 통해 사회복지 활동을 펼쳤다. |
해방이후 인성회 창립전까지 (1945년-1975년) 교회는 미국 가톨릭 구제위원회를 비롯한 외원단체의 후원 아래 해방과 전후의 한국 민중들에게 사회복지 활동을 펼쳤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보성체 수도회' 같은 사회복지 전문 수도회와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와 같은 전문 사도직 단체가 설립되었다. |
인성회 활동시기부터 사회복지위원회 설립 전까지(1975년-1991년) 교회는 미국 가톨릭 구제위원회의 활동과 자산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로 이어받아 인간 개발과 사회복지를 실현했다. 그리고 본당 중심의 지역사회 복지가 교구나 수도회 차원의 전문 사회복지 활동으로 대체되고, 정부는 사회복지 시설의 운영을 천주교에 맡기기 시작했다. 또한 사회복지를 전담하는 사목자들이 생겨났다. |
교회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의 인성회를 사회복지위원회로 개칭하고 사회복지를 전담하도록 했다. 또한 각 교구마다 사회복지회(국 또는 위원회)가 설립되고 교구 내의 사회복지 업무를 통합적으로 계획, 조정, 지원하였다. |